2008년 05월 15일
브리핑
마지막 입찰자의 서류심사가 끝나고, 나는 패널을 모두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서류에서 자격미달이 되는 기업은 없었기에 거기에 대해서 별도의 서류처리를 할 걱정은 덜었다. 서류에 묻혀 사는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판단하기에 서류심사를 통과 못 할 것 같거든 애초에 서류를 내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근데 별 일이네요. 관리국에서 비정기 입찰도 내고."
"아니, 의외로 비정기 입찰도 많아. 다만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비정기 입찰을 여러 번 볼 만큼 오래 배속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지금 내 옆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이 녀석도 이제 조달청에 배속되어 온 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나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조달청은 생각보다 국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어서 장기로 붙어있는 사람이 적은 편이니까. 내가 저런 걸 알고 있는 이유는, 관리국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조달청 장기 근속자 명단에 어쩌다 보니 이름을 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관리국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모든 장비에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모든 장비를 직접 제작하거나, 개인적으로 1 대 1 계약을 맺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관리국의 규모가 커지고 전 차원으로 포스트를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같은 구멍가게 거래 식으로는 더 이상 늘어만 가는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본국 산하에 일명 '조달청' 을 설치하고 대부분의 기자재를 입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기자재 같은 것들은 거의 100% 입찰 방식으로 가져오고 있으며, 전문 기술 부분에서도 보안등급 3등급 이하의 기술이 포함된 장비는 90% 이상이 입찰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조달청이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조달청의 업무 자체가 수많은 정기, 비정기 입찰들에 대한 서류를 접수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일이 서류의 전쟁이다. 그걸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짜증나고 귀찮게 할 수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각급 부대나 지상본부, 심지어는 본국에서까지 브리핑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국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을 리가 없다. 관리국 내에서 조달청은 묘하게 천시 받는 부서여서 처음 국원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관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초반부터 외곽 포스트를 떠돌아다닌 덕에, 그런 사실도 모르고 조달청에 덥석 들어와 어쩌다 보니 장기 전속까지 하게 되었지만.
"서류 거기까지만 하고, 잠깐 들어가 눈 좀 붙여."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몇 개 남지도 않았는데요."
"내일 아침부터 브리핑 있잖아. 첫 브리핑인데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그리고 자네가 그렇게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서류가 사실은 지난 입찰 때 서류라는 사실도 있지. 한 마디 하려다가, 내일 브리핑도 하는 데 괜히 기 꺾어놓는 것도 뭣해서 적당히 보내버렸다. 게다가 눈이 벌건 게, 저 상태로 놔뒀다가는 내 경험으로는 한 두 시간 뒤에는 슬슬 환영이 보일 테니까. 내일 브리핑해야 되는 녀석을 그런 상태로 만들면 내가 직무유기다.
"자료는 다 들고 왔지?"
"예. 그런데 선배님."
"왜?"
"떨립니다."
사람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 사실, 하필 이 녀석이 재수 없게도 첫 브리핑을 지상본부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발표에만 집중해. 앞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알간? 질문은 내가 받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알겠으면 후딱 들어가. 1분 뒤면 브리핑 시작이다."
녀석은 바싹 굳은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관리국에서 칭찬해 줄 만한 점 하나는 직책이 높다고 잰체하면서 회의 같은 데 늦게 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흠, 그러면 조달청 주관 제 293차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도 브리핑은 큰 사고 없이 끝났다. 들어가기 전에는 별별 우는 소리를 다 하더니만 또 들어가서는 여러 번 해 본 사람마냥 부드럽게 진행을 해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약간 놀랄 정도였다. 그래도 브리핑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자 눈이 살짝 풀리는 걸 보면, 미칠 듯이 긴장했었나보다 싶기도 하고.
"점심은 네가 사라."
"에에?"
"첫 브리핑 턱으로."
"무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긴, 헛소리지.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스 리리컬 동맹단 가든지부
"근데 별 일이네요. 관리국에서 비정기 입찰도 내고."
"아니, 의외로 비정기 입찰도 많아. 다만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비정기 입찰을 여러 번 볼 만큼 오래 배속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
지금 내 옆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이 녀석도 이제 조달청에 배속되어 온 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나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조달청은 생각보다 국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어서 장기로 붙어있는 사람이 적은 편이니까. 내가 저런 걸 알고 있는 이유는, 관리국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조달청 장기 근속자 명단에 어쩌다 보니 이름을 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관리국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모든 장비에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모든 장비를 직접 제작하거나, 개인적으로 1 대 1 계약을 맺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관리국의 규모가 커지고 전 차원으로 포스트를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과거와 같은 구멍가게 거래 식으로는 더 이상 늘어만 가는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본국 산하에 일명 '조달청' 을 설치하고 대부분의 기자재를 입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무기자재 같은 것들은 거의 100% 입찰 방식으로 가져오고 있으며, 전문 기술 부분에서도 보안등급 3등급 이하의 기술이 포함된 장비는 90% 이상이 입찰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조달청이 인기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조달청의 업무 자체가 수많은 정기, 비정기 입찰들에 대한 서류를 접수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매일이 서류의 전쟁이다. 그걸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짜증나고 귀찮게 할 수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각급 부대나 지상본부, 심지어는 본국에서까지 브리핑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국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을 리가 없다. 관리국 내에서 조달청은 묘하게 천시 받는 부서여서 처음 국원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잠시 지나가는 관문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초반부터 외곽 포스트를 떠돌아다닌 덕에, 그런 사실도 모르고 조달청에 덥석 들어와 어쩌다 보니 장기 전속까지 하게 되었지만.
"서류 거기까지만 하고, 잠깐 들어가 눈 좀 붙여."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몇 개 남지도 않았는데요."
"내일 아침부터 브리핑 있잖아. 첫 브리핑인데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그리고 자네가 그렇게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서류가 사실은 지난 입찰 때 서류라는 사실도 있지. 한 마디 하려다가, 내일 브리핑도 하는 데 괜히 기 꺾어놓는 것도 뭣해서 적당히 보내버렸다. 게다가 눈이 벌건 게, 저 상태로 놔뒀다가는 내 경험으로는 한 두 시간 뒤에는 슬슬 환영이 보일 테니까. 내일 브리핑해야 되는 녀석을 그런 상태로 만들면 내가 직무유기다.
"자료는 다 들고 왔지?"
"예. 그런데 선배님."
"왜?"
"떨립니다."
사람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 사실, 하필 이 녀석이 재수 없게도 첫 브리핑을 지상본부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발표에만 집중해. 앞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알간? 질문은 내가 받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알겠으면 후딱 들어가. 1분 뒤면 브리핑 시작이다."
녀석은 바싹 굳은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관리국에서 칭찬해 줄 만한 점 하나는 직책이 높다고 잰체하면서 회의 같은 데 늦게 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흠, 그러면 조달청 주관 제 293차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도 브리핑은 큰 사고 없이 끝났다. 들어가기 전에는 별별 우는 소리를 다 하더니만 또 들어가서는 여러 번 해 본 사람마냥 부드럽게 진행을 해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약간 놀랄 정도였다. 그래도 브리핑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자 눈이 살짝 풀리는 걸 보면, 미칠 듯이 긴장했었나보다 싶기도 하고.
"점심은 네가 사라."
"에에?"
"첫 브리핑 턱으로."
"무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긴, 헛소리지.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스 리리컬 동맹단 가든지부
# by | 2008/05/15 20:32 | staffLIFE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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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시험에 떨어진 턱(...)도 일단은 가능 <-
레녹님, 프로타디오님, 어느폐인님, 세이유님, 그냥 붙이기 나름이죠 뭐.
현실히즈님, 운이 없는 녀석이라 그렇습니다.